시암-버마 전쟁확장 시대
1563년–1605년
시암-버마 전쟁(1563년–1605년). 당신은 「장정」에서 시작해, 살아남는다면 「짜오프라야」까지 오를 수도 있다. 이 시대에는 실제 전투 14개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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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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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짜오프라야
실제 전투
| 연도 | 전투 | 추정 사상률 |
|---|---|---|
| 1563년 | 핏사눌록 함락버마 왕 버인나웅이 흰 코끼리를 바치라는 구실로 대군을 이끌고 남하했다. 북쪽의 핏사눌록이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 ≈10% |
| 1564년 | 아유타야 포위버마군이 도성을 에워쌌다. 왕은 흰 코끼리 네 마리를 바치고 화친을 청했고, 왕자들은 볼모로 바고에 끌려갔다. | ≈8% |
| 1569년 | 아유타야 함락포위는 열 달 동안 이어졌다. 성안의 내통자가 성문을 열어 아유타야가 무너졌다. 버마군은 수만 명을 바고로 끌고 갔고, 시암은 버마의 속국이 되었다. | ≈30% |
| 1570년 | 캄보디아의 침입시암이 패한 틈을 타 캄보디아가 약탈하러 군사를 보냈다. 수비대가 그들을 몰아냈다. | ≈8% |
| 1575년 | 위앙짠 원정시암군은 버마의 명에 따라 버마군과 함께 란쌍을 쳤다. 젊은 나레쑤언 왕자도 종군했다가 도중에 천연두에 걸렸다. | ≈8% |
| 1578년 | 캄보디아의 재침캄보디아군이 또 국경 마을을 약탈하러 왔다가 쫓겨 갔다. | ≈8% |
| 1582년 | 캄보디아 수군의 침입캄보디아 선단이 짜오프라야강을 거슬러 올라와 약탈하다가 쫓겨 갔다. | ≈8% |
| 1584년 | 싯따웅강 전투나레쑤언은 크렝에서 더는 버마를 섬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물러나는 길에 버마 장수 수라감마가 싯따웅강까지 쫓아오자, 나레쑤언은 강 건너에서 총 한 방으로 그를 코끼리 등에서 떨어뜨렸다. | ≈8% |
| 1586년 | 아유타야 방어전버마 왕이 다섯 달 동안 도성을 에워쌌다. 나레쑤언은 결사대를 이끌고 밤마다 버마 진영을 기습했고, 칼을 입에 문 채 적의 목책을 기어올랐다. 끝내 버마군은 군량이 떨어져 물러갔다. | ≈10% |
| 1590년 | 수판 전투선왕이 세상을 떠난 틈을 타 버마가 다시 군사를 남쪽으로 보냈다. 나레쑤언은 수판부리 성 밖에서 맞서 그들을 물리쳤다. | ≈8% |
| 1593년 | 농사라이 코끼리 결투버마 왕세자가 대군을 이끌고 남하했다. 나레쑤언의 전투 코끼리가 적진으로 뛰어들어 왕세자의 코끼리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두 코끼리가 맞부딪치는 순간 나레쑤언의 칼이 왕세자를 베었고, 버마군은 무너졌다. | ≈12% |
| 1594년 | 로벡 함락어려울 때 틈을 노려 약탈한 캄보디아에 앙갚음하려고, 나레쑤언은 캄보디아의 도성 로벡을 함락했다. | ≈10% |
| 1595년 | 바고 포위나레쑤언의 첫 번째 버마 반격. 바고를 석 달 동안 에워쌌지만 군량이 모자라 군사를 물렸다. | ≈8% |
| 1600년 | 따응우 포위바고는 이미 반란군에게 함락된 뒤였다. 나레쑤언은 따응우 성 밑까지 쫓아갔지만, 성 밖에는 깊은 해자가 파여 물이 가득했다. 군량이 바닥나 시암군은 물러났다. | ≈10% |
사상률은 사료를 바탕으로 게임이 추정한 수치로, 전사 확률 계산에 쓰입니다. 참고용으로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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