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확장 시대
1583년–1637년
임진왜란(1583년–1637년). 당신은 「정병」에서 시작해, 살아남는다면 「병마절도사」까지 오를 수도 있다. 이 시대에는 실제 전투 27개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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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전투
| 연도 | 전투 | 추정 사상률 |
|---|---|---|
| 1583년 | 종성 전투여진 추장 니탕개가 기병 2만으로 종성을 에워쌌다. 신립이 기병을 이끌고 성문을 박차고 나가자, 여진은 두만강 북쪽으로 물러갔다. | ≈10% |
| 1587년 | 손죽도 전투왜구의 배들이 전라도의 섬들을 습격해 변장이 전사했다. 조정이 군사를 보냈을 때 왜선은 이미 바다로 나간 뒤였다. | ≈6% |
| 1588년 | 시전부락 정벌조정은 두만강 너머로 군사를 보내 여진의 마을을 불태우고, 지난해 녹둔도의 원수를 갚았다. | ≈10% |
| 1592년 | 부산진 함락4월 13일, 칠백 척의 왜선이 바다에 나타났다. 이튿날 아침 부산진이 무너지고, 첨사 정발이 전사했다. | ≈30% |
| 1592년 | 동래성 함락왜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나무판을 세웠다. "싸우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 달라." 부사 송상현은 판자로 답했다.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성이 떨어지던 날, 그는 조복을 입고 성루에 앉은 채 칼을 맞았다. | ≈30% |
| 1592년 | 옥포 해전이순신의 함대가 처음으로 출격해 왜선 스물여섯 척을 불태웠다. 아군은 한 척도 잃지 않았다. | ≈10% |
| 1592년 | 상주 전투순변사 이일의 군사는 대부분 며칠 전 논에서 끌려 나온 농민이었다. 왜군의 조총이 울리자 진이 그대로 무너졌다. | ≈20% |
| 1592년 | 충주 탄금대 전투신립은 남한강을 등지고 기병 진을 쳤다. 논은 진창이라 말이 달리지 못했다. 신립은 강에 몸을 던졌고, 한성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 ≈25% |
| 1592년 | 사천 해전거북선이 처음으로 싸움에 나섰다. 왜병의 조총알은 쇠못이 박힌 지붕에 맞고 튀어 나갈 뿐이었다. 이순신은 왼쪽 어깨에 총알을 맞았다. | ≈10% |
| 1592년 | 임진강 전투조선군은 임진강을 열흘 동안 지켰다. 왜군이 물러나는 척하자 장수들은 말리는 말도 듣지 않고 강을 건너 쫓아갔다가 전군이 무너졌다. | ≈20% |
| 1592년 | 한산도 대첩이순신은 왜선을 넓은 바다로 끌어내 학익진으로 에워쌌다. 쉰아홉 척이 격침되거나 나포되었고, 왜군은 이후 서해로 군량을 나르지 못했다. | ≈15% |
| 1592년 | 금산 전투의병장 조헌이 칠백 명으로 금산을 쳤다. 칠백 명은 한 사람도 달아나지 않고 모두 전사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한데 묻고 칠백의총이라 불렀다. | ≈30% |
| 1592년 | 제1차 진주성 전투목사 김시민은 삼천팔백 명으로 엿새를 버텼고, 왜군 삼만이 물러갔다. 김시민은 총알을 맞아 승리를 보지 못했다. | ≈8% |
| 1593년 | 평양성 전투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대군 사만과 대포를 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평양성이 무너지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밤을 틈타 달아났다. | ≈10% |
| 1593년 | 행주 대첩전라도 순찰사 권율이 이천여 명으로 산성을 지켜 왜군 삼만을 물리쳤다. 성안의 여인들은 행주치마에 돌을 담아 성벽까지 날랐다. | ≈8% |
| 1593년 | 제2차 진주성 전투왜군은 지난해의 패배를 갚으려 십만으로 성을 에워쌌다. 아흐레 만에 성이 떨어지고, 성안의 군민 육만이 거의 모두 죽었다. 기생 논개는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 | ≈50% |
| 1597년 | 칠천량 해전이순신이 붙잡혀 옥에 갇히고 원균이 수군을 맡았다. 칠천량에서 밤에 기습을 당해 조선 수군은 거의 전멸했고, 남은 배는 열두 척뿐이었다. | ≈40% |
| 1597년 | 남원성 함락왜군 오만이 남원을 에워쌌다. 명나라 장수 양원은 기병 수십 명과 함께 포위를 뚫고 달아났고, 성안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다. 왜병은 죽은 이들의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보내 상을 받았다. | ≈45% |
| 1597년 | 직산 전투명나라 기병이 직산에서 북상하는 왜군을 막아 냈다. 한성은 지켜졌다. | ≈5% |
| 1597년 | 명량 해전이순신은 말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 물살이 거센 울돌목에서, 그는 열세 척으로 백삼십여 척의 왜선을 막아 냈다. | ≈15% |
| 1598년 | 울산성 전투명과 조선의 연합군이 가토 기요마사가 새로 쌓은 왜성을 에워쌌다. 성안의 왜병은 말을 잡아먹고 말 오줌을 마시며 원군이 올 때까지 버텼다. | ≈10% |
| 1598년 | 노량 해전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왜군이 물러가려 했다. 이순신은 명나라 장수 진린과 함께 노량 바다에서 길을 막았다. 이순신은 총알을 맞고, 숨을 거두며 말했다.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 ≈20% |
| 1619년 | 사르후 전투조선은 강홍립에게 군사 만삼천을 주어 명나라를 돕게 했다. 명군은 네 갈래 모두 크게 패했고, 강홍립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후금에 항복했다. | ≈25% |
| 1624년 | 안현 전투평안병사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한때 한성까지 쳐들어왔고, 임금은 공주로 피란했다. 관군은 안현에서 반란군을 무찔렀다. | ≈6% |
| 1627년 | 안주성 함락후금 대군 삼만이 압록강을 건넜고, 안주성은 하루밖에 버티지 못했다. 조정은 강화도로 피했다가 끝내 후금과 형제의 나라가 되기로 맹약했다. | ≈30% |
| 1636년 | 남한산성 포위청 태종이 몸소 대군 십이만을 이끌고 남하했다.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갔지만, 성안의 양식은 쉰 날 치뿐이었다. 날이 몹시 추워 성 위의 군사들은 동상으로 손가락을 잃었다. | ≈10% |
| 1637년 | 쌍령 전투경상도 근왕군은 쌍령에서 청나라 기병 삼백 명에게 짓밟혔다. 사만이 무너져 달아났고, 적의 칼보다 서로 밟혀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 | ≈35% |
사상률은 사료를 바탕으로 게임이 추정한 수치로, 전사 확률 계산에 쓰입니다. 참고용으로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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