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골지일

시대 소개

백년 전쟁확장 시대

1337년–1453년

백년 전쟁(1337년–1453년). 당신은 「보졸」에서 시작해, 살아남는다면 「원수」까지 오를 수도 있다. 이 시대에는 실제 전투 25개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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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실제 전투

연도전투추정 사상률
1340년슬로이스 해전잉글랜드 장궁병들이 배 위에서 프랑스 함대로 화살을 퍼부었다. 프랑스의 두 제독 중 하나는 전사하고, 하나는 돛대에 목이 매달렸다.≈25%
1346년크레시 전투오후에 비가 내렸다. 제노바 석궁병들의 시위는 젖었지만, 잉글랜드 장궁병들은 활시위를 모자 속에 넣어 두었다. 프랑스 기사들은 열다섯 번 돌격했고, 그때마다 화살비 속에 쓰러졌다.≈12%
1347년칼레 포위전열한 달의 포위 끝에 칼레가 항복했다. 시민 여섯 명이 목에 밧줄을 걸고 나와 용서를 빌었고, 왕비가 간청한 덕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6%
1356년푸아티에 전투흑태자의 군대는 산울타리 사이에 갇혀 있었다. 프랑스 기사들은 말에서 내려 걸어서 나아갔고, 적진에 닿았을 때는 칼을 들 힘도 없었다. 프랑스 왕 장 2세가 사로잡혔다.≈12%
1358년모 전투봉기한 농민들이 모의 장터 요새를 쳤다가 한 줌의 기사들에게 흩어졌다. 그 뒤 몇 주 동안 시골은 목매달린 농민들로 가득했다.≈20%
1364년코슈렐 전투브르타뉴 기사 뒤 게클랭이 처음으로 프랑스 왕을 위해 승리를 거두고 나바라 왕의 군대를 무찔렀다.≈5%
1367년나헤라 전투흑태자가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에서 뒤 게클랭과 카스티야군을 무찔렀다.≈10%
1370년리모주 포위전리모주가 흑태자를 배반했다. 도시가 떨어지자 흑태자는 학살을 명했다.≈30%
1372년라로셸 해전프랑스의 동맹국 카스티야의 갤리선들이 라로셸 앞바다에서 잉글랜드 함대를 불태웠다.≈15%
1382년로제베커 전투프랑스 왕 샤를 6세의 기사들이 로제베커에서 플랑드르 반란군을 짓밟았다. 반란 지도자의 시신은 나무에 매달렸다.≈3%
1388년오터번 전투스코틀랜드군이 달빛 아래 야습을 해 왔다. 잉글랜드 주장 '핫스퍼' 헨리 퍼시가 사로잡혔다.≈10%
1396년니코폴리스 전투프랑스 기사들이 십자군이 되어 오스만군과 싸웠다. 보병을 기다리지 않고 앞다투어 돌격하다가 전군이 무너졌다.≈30%
1403년슈루즈베리 전투퍼시 가문이 반란을 일으켰다. 양쪽 모두 잉글랜드 장궁병이라 화살이 비처럼 서로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헨리 왕자는 얼굴에 화살을 맞고도 싸움터를 떠나지 않았다.≈10%
1415년아르플뢰르 포위전헨리 5세가 다섯 주 동안 포위하자 도시가 항복했다. 그러나 잉글랜드군의 삼분의 일이 이질에 걸려 있었다.≈10%
1415년아쟁쿠르 전투갓 갈아엎은 밭이 비에 젖어 진흙탕이 되었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프랑스 기사들은 진흙에 빠졌고, 잉글랜드 궁병들은 활을 내던지고 나무망치를 들고 덤벼들었다.≈15%
1418년루앙 포위전도시는 노약자들을 성 밖으로 내보냈지만, 잉글랜드군은 지나가지 못하게 했다. 성벽과 적진 사이의 해자에 갇힌 사람들은 겨울 동안 하나둘 굶어 죽었다.≈20%
1421년보제 전투스코틀랜드 원군과 프랑스군이 보제에서 잉글랜드군을 무찔렀다. 왕의 동생 클래런스 공작이 전사했다.≈15%
1424년베르뇌유 전투이 싸움은 '제2의 아쟁쿠르'라 불렸다. 프랑스군과 스코틀랜드군은 육천 명 넘게 죽었다.≈20%
1429년청어 전투사순절에 먹을 청어를 나르던 잉글랜드군은 수레로 원진을 쳐 프랑스군의 공격을 막아 냈다. 땅바닥이 온통 청어였다.≈8%
1429년오를레앙 포위전로렌에서 온 열일곱 살 농가의 처녀가 갑옷을 입고, 반년째 포위된 오를레앙에 들어갔다. 아흐레 뒤 잉글랜드군은 포위를 풀었다.≈10%
1429년파테 전투잉글랜드군이 진을 다 치기도 전에 프랑스 기병이 들이닥쳤다. 장궁병들은 말뚝을 박을 틈도 없이 무더기로 베였다. 탤벗이 사로잡혔다.≈20%
1430년콩피에뉴 포위전잔 다르크는 콩피에뉴 성 밖에서 부르고뉴군에게 사로잡혀 잉글랜드에 팔려 갔다.≈8%
1436년파리 탈환파리 시민들이 성문을 열고 샤를 7세의 군대를 맞아들였다.≈6%
1450년포르미니 전투프랑스군의 대포 두 문이 잉글랜드 궁병 진지를 두들겼다. 장궁병들이 대포를 빼앗으려 뛰쳐나왔다가 브르타뉴 기병에게 옆구리를 찔려 무너졌다. 노르망디를 잃었다.≈20%
1453년카스티용 전투노장 탤벗은 프랑스군이 물러나는 줄 알고 공격을 명했다. 프랑스 진영의 대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탤벗의 말이 쓰러졌고, 그는 도끼에 맞아 죽었다.≈20%

사상률은 사료를 바탕으로 게임이 추정한 수치로, 전사 확률 계산에 쓰입니다. 참고용으로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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