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부 말기확장 시대
1837년–1877년
막부 말기(1837년–1877년). 당신은 「아시가루」에서 시작해, 살아남는다면 「가로」까지 오를 수도 있다. 이 시대에는 실제 전투 37개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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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전투
| 연도 | 전투 | 추정 사상률 |
|---|---|---|
| 1837년 | 오시오 헤이하치로의 난오사카 마치부교소의 요리키였던 오시오 헤이하치로가 '구민(救民)'의 깃발을 내걸고 들고일어났다. 난은 한나절 만에 진압되었지만, 큰불이 오사카 시가의 5분의 1을 태웠다. | ≈2% |
| 1863년 | 시모노세키 전쟁(미국·프랑스의 보복)조슈의 포대가 해협을 지나는 외국 배에 포격을 가했다. 얼마 뒤 미국 군함이 해협에 들어와 조슈의 배 두 척을 격침했고, 이어 프랑스 군함이 상륙해 포대를 부숴 버렸다. | ≈5% |
| 1863년 | 사쓰에이 전쟁나마무기 사건을 따지러 영국 함대가 가고시마만으로 들어왔다. 포대와 군함이 폭풍우 속에서 포격을 주고받았고, 영국 함장이 포탄에 맞아 죽었으며 조카마치도 크게 불탔다. 이 싸움 뒤 사쓰마는 영국에게서 배우기 시작했다. | ≈2% |
| 1863년 | 덴추구미의 변존왕양이파 낭사들이 공경 나카야마 다다미쓰를 받들고 야마토의 고조 대관소를 습격했다. 8월 18일 정변으로 뒷배를 잃은 그들은 여러 번의 군사에게 쫓겨 요시노 산속으로 들어갔고, 한 달여 만에 궤멸했다. | ≈2% |
| 1863년 | 이쿠노의 변낭사 히라노 구니오미 등이 덴추구미에 호응해 다지마 이쿠노에서 들고일어났다. 대장은 그날 밤 달아났고, 그들이 끌어모은 농병들이 도리어 그들을 쫓아 때렸다. 사흘 만에 흩어졌다. | ≈1% |
| 1864년 | 금문의 변조슈 군사가 교토로 쳐들어와 하마구리고몬에서 아이즈·사쓰마 군사와 격전을 벌였다. 기지마 마타베에는 총탄을 맞은 뒤 자결했고, 구사카 겐즈이는 다카쓰카사 저택에서 자결했다. 전화가 교토의 민가 이만여 채를 태웠다. | ≈15% |
| 1864년 | 시모노세키 전쟁(4개국 함대)영국·프랑스·네덜란드·미국 4개국의 군함 열일곱 척이 시모노세키를 포격했고, 육전대가 상륙해 포대를 점령했다. 다카스기 신사쿠가 나서서 강화를 맺었다. 조슈 사람들은 양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제 눈으로 보았다. | ≈8% |
| 1864년 | 덴구당의 난미토의 존왕양이파가 쓰쿠바산에서 군사를 일으켜 막부군, 미토의 보수파와 반년 넘게 싸웠다. 마지막에 천여 명이 교토를 향해 나아가 눈 덮인 산을 넘었고, 에치젠에서 가가번에 항복했다. 그중 352명이 쓰루가에서 참수되었다. | ≈4% |
| 1865년 | 오다·에도 전투다카스기 신사쿠가 고잔지에서 수십 명을 이끌고 거병하자 여러 부대가 뒤따랐고, 오다와 에도에서 번 보수파의 군대를 격파했다. 이때부터 조슈의 번론은 토막으로 돌아섰다. | ≈5% |
| 1866년 | 사경 전쟁·오시마 방면막부 함대가 스오오시마를 포격했고, 상륙한 군사들은 섬에서 불을 지르고 사람을 죽이고 약탈했다. 다카스기 신사쿠가 헤이인마루를 타고 밤에 막부 군함을 기습했고, 뒤이어 조슈 군사가 섬을 되찾았다. | ≈6% |
| 1866년 | 사경 전쟁·게이슈 방면히코네번과 다카다번의 군사는 대대로 물려받은 갑주를 입고 나섰다가 조슈의 양총대에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뒤에 막부의 양식 보병이 도착해, 두 군대는 정전 때까지 산속에서 대치했다. | ≈8% |
| 1866년 | 사경 전쟁·세키슈 방면오무라 마스지로가 군사를 이끌고 쓰와노번 땅을 지나 연전연승했다. 하마다 번주는 성을 버리고 달아났고, 성은 제 편의 손에 불탔다. | ≈10% |
| 1866년 | 사경 전쟁·고쿠라 방면조슈 군사가 간몬 해협을 건너 고쿠라를 쳤다. 쇼군 이에모치가 오사카성에서 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러 번이 잇따라 군사를 물렸고, 고쿠라번은 제 손으로 성에 불을 질렀다. | ≈12% |
| 1868년 | 도바·후시미 전투구막부군 만오천 명이 교토로 올라오다가 도바와 후시미에서 삿초의 총포에 가로막혔다. 신정부군 진영에 비단 어기가 오르자 요도번은 성문을 닫았고, 쓰번은 창끝을 돌렸다.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대군을 버려둔 채 배를 타고 에도로 달아났다. | ≈15% |
| 1868년 | 아와오키 해전에노모토 다케아키의 가이요마루가 아와 앞바다에서 사쓰마의 가스가마루와 쇼호마루를 추격했다. 쇼호마루는 좌초해 제 선원들 손에 불태워졌다. 일본 최초의 근대 군함끼리의 해전이었다. | ≈3% |
| 1868년 | 고슈 가쓰누마 전투곤도 이사미는 오쿠보 쓰요시라는 가명으로 고요 진무대를 이끌고 고후성을 차지하러 서둘렀지만 한발 늦었다. 가는 길 내내 도망병이 끊이지 않았고, 가쓰누마에서 이타가키 다이스케의 군사와 맞붙어 한나절도 못 되어 무너졌다. | ≈12% |
| 1868년 | 우쓰노미야성 전투오토리 게이스케와 히지카타 도시조가 구막부군을 이끌고 우쓰노미야성을 함락했지만, 며칠 뒤 신정부의 원군에게 다시 빼앗겼다. 히지카타는 발에 총탄을 맞았다. | ≈8% |
| 1868년 | 시라카와구치 전투신정부군이 도호쿠로 가는 관문인 시라카와성을 빼앗았다. 오우에쓰 열번 동맹은 군사는 많았지만 총이 낡았다. 몇 번이고 반격했으나 모두 격퇴당했다. | ≈12% |
| 1868년 | 우에노 전쟁쇼기타이가 우에노 간에이지에 틀어박혔다. 오무라 마스지로가 혼고다이에서 사가번의 암스트롱포로 포격했고, 싸움은 하루 만에 끝났다. 절의 본당은 잿더미가 되었고, 시신은 며칠이나 산에 버려졌지만 아무도 감히 거두러 가지 못했다. | ≈25% |
| 1868년 | 호쿠에쓰 전쟁·나가오카성 전투나가오카번의 가로 가와이 쓰구노스케는 중립을 지키려 했지만, 오지야 담판에서 단칼에 거절당해 나가오카는 동맹에 가담했다. 성을 잃었다가 되찾았지만 끝내 함락되었다. 가와이는 다리에 총탄을 맞고 아이즈로 피하던 길에 죽었다. | ≈15% |
| 1868년 | 니혼마쓰성 전투니혼마쓰번의 주력은 모두 시라카와에 가 있었고, 성에는 노인과 소년만 남았다. 열두 살에서 열일곱 살의 소년병이 총을 메고 맞서 싸웠지만, 성은 하루 만에 떨어졌다. | ≈20% |
| 1868년 | 보나리 고개 전투신정부군은 아이즈의 대군이 지키는 길을 피해, 수비가 허술한 보나리 고개를 넘어 쳐들어갔다. 수비군은 한나절 만에 무너졌고, 와카마쓰성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 ≈10% |
| 1868년 | 아이즈 와카마쓰성 전투신정부군이 와카마쓰 성 아래로 밀려들었다. 이모리산에 있던 뱌코타이 소년들은 성 아래에 불길이 오르는 것을 보고 성이 이미 떨어진 줄 알아 열아홉 명이 자결했다. 성은 한 달 동안 포위되었고, 천수각은 포탄에 맞아 성한 데가 없었다. 끝내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 ≈20% |
| 1868년 | 마쓰마에성 전투히지카타 도시조가 군사를 이끌고 마쓰마에성을 함락하여, 구막부군은 에조치 전체를 손에 넣었다. 얼마 뒤 기함 가이요마루가 에사시 앞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암초에 걸려 가라앉았다. | ≈3% |
| 1869년 | 미야코만 해전구막부군은 미야코만에서 신정부의 철갑함 '고테쓰'를 빼앗으려 했다. 가이텐호가 돌진해 뱃전을 붙였지만, 두 배의 높이가 달랐다. 건너뛴 이들은 고테쓰의 개틀링 기관포에 쓰러졌고, 함장 고가 겐고가 전사했다. | ≈15% |
| 1869년 | 후타마타구치 전투히지카타 도시조는 후타마타구치의 산길에 흉벽을 쌓고, 오후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싸워 신정부군을 물리쳤다. 그러나 다른 곳의 방어선이 먼저 무너져, 히지카타는 하코다테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 ≈5% |
| 1869년 | 하코다테 총공격·고료카쿠 개성신정부군이 바다와 육지 양쪽에서 하코다테를 총공격했다. 히지카타 도시조는 말을 달려 잇폰기 관문으로 돌진하다 총탄을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이레 뒤 에노모토 다케아키가 고료카쿠를 내주었고, 보신 전쟁은 끝났다. | ≈25% |
| 1874년 | 사가의 난전 사법경 에토 신페이가 사가에서 거병했다. 오쿠보 도시미치가 몸소 사가로 달려가 진두지휘하여 한 달도 안 되어 평정했다. 에토는 가고시마로 달아나 사이고를 찾아갔으나 거절당했고, 뒤에 도사에서 붙잡혀 효수되었다. | ≈3% |
| 1876년 | 신푸렌의 난구마모토의 경신당 백칠십여 명은 서양 총을 쓰지 않겠다며 칼과 창만 들고 밤중에 구마모토 진대를 습격해 사령장관 다네다 마사아키를 죽였다. 날이 밝자 진대병이 전열을 가다듬었고, 난은 하루 만에 평정되었다. | ≈5% |
| 1876년 | 아키즈키의 난후쿠오카 아키즈키의 사족이 신푸렌에 호응해 들고일어났으나, 노기 마레스케가 이끈 고쿠라 진대병에게 격파되었다. | ≈2% |
| 1876년 | 하기의 난전 참의 마에바라 잇세이가 하기에서 들고일어났다. 그는 요시다 쇼인의 제자이자 유신의 공신이었다. 난은 열흘 남짓 만에 평정되었고, 마에바라는 붙잡혀 참수되었다. | ≈3% |
| 1877년 | 구마모토성 전투사이고군 만여 명이 구마모토성을 에워쌌다. 개전 며칠 전, 성의 천수각이 원인 모를 불로 타 버렸다. 사령장관 다니 다테키는 진대병을 이끌고 오십여 일을 버텼고, 마침내 원군이 길을 뚫었다. | ≈6% |
| 1877년 | 우에키 전투고쿠라에서 달려온 제14연대가 우에키에서 사이고군과 맞닥뜨렸고, 야간 전투에서 연대기를 빼앗겼다. 연대장 노기 마레스케 소좌는 이 일을 평생 잊지 않았다. | ≈6% |
| 1877년 | 다바루자카 전투구마모토로 가는 길목이었다. 비가 그치지 않아 사람도 말도 흠뻑 젖었고, 두 군대는 비탈길에서 열이레 동안 뺏고 빼앗기기를 거듭했다. 정부군은 검술에 능한 경찰을 골라 발도대를 꾸렸는데, 그중에는 옛 아이즈 번사가 적지 않았다. | ≈15% |
| 1877년 | 와다고에 전투사이고 다카모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몸소 최전선에 서서 지휘했다. 사이고군은 졌다. 이튿날 그는 전군 해산을 명하고, 남든 떠나든 각자 정하라고 했다. | ≈15% |
| 1877년 | 에노다케 돌파남은 사이고군은 밤을 틈타 에노다케를 기어올라, 산 위에서 정부군의 포위를 뚫고 가고시마를 향해 남쪽으로 내달렸다. | ≈8% |
| 1877년 | 시로야마 전투가고시마로 돌아온 사이고군은 삼백여 명뿐이었고, 수만의 정부군에게 시로야마에서 포위되었다. 9월 24일 새벽 총공격이 시작되었고, 사이고 다카모리는 총탄을 맞은 뒤 벳푸 신스케의 가이샤쿠를 받았다. 세이난 전쟁은 끝났다. | ≈50% |
사상률은 사료를 바탕으로 게임이 추정한 수치로, 전사 확률 계산에 쓰입니다. 참고용으로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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