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페이 전쟁확장 시대
1156년–1221년
겐페이 전쟁(1156년–1221년). 당신은 「잡병」에서 시작해, 살아남는다면 「대장군」까지 오를 수도 있다. 이 시대에는 실제 전투 35개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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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전투
| 연도 | 전투 | 추정 사상률 |
|---|---|---|
| 1156년 | 호겐의 난고시라카와 천황과 스토쿠 상황 형제가 맞섰다. 미나모토노 요시토모와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밤을 틈타 시라카와 북전에 불을 질렀고, 하룻밤 만에 승부가 났다. 싸움이 끝난 뒤 기요모리는 명을 받아 숙부 다다마사를 베었고, 요시토모는 명을 받아 아버지 다메요시를 베었다. | ≈7% |
| 1159년 | 헤이지의 난후지와라노 노부요리와 미나모토노 요시토모가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구마노에 참배하러 간 틈을 타 상황을 가두었다. 기요모리는 서둘러 도성으로 돌아와 로쿠하라에서 맞서 싸웠다. 요시토모는 크게 패하여 아들 몇을 데리고 동국으로 달아났다. | ≈40% |
| 1180년 | 우지바시 전투모치히토 왕이 영지를 내려 여러 구니의 겐지에게 헤이케를 치라고 호소했다. 일흔일곱 살의 미나모토노 요리마사는 우지바시의 다리 판자를 뜯어내고 버텼지만, 헤이케의 반도 무사들은 말을 탄 채 강을 건넜다. 요리마사는 뵤도인에서 자결했고, 모치히토 왕은 나라로 달아나던 길에 죽임을 당했다. | ≈30% |
| 1180년 | 야마키 저택 습격이즈에 유배된 지 이십 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거병했다. 미시마 대사의 제례가 열리던 밤, 호조 도키마사 등이 헤이케의 모쿠다이 야마키 가네타카를 습격해 죽였다. | ≈4% |
| 1180년 | 이시바시야마 전투요리토모의 기마 무사 삼백은 큰비 속에서 오바 가게치카의 기마 무사 삼천에게 무너졌다. 요리토모는 산속으로 숨었다. 산을 뒤지던 가지와라 가게토키가 그를 보고도 못 본 척 지나쳤다고 한다. | ≈45% |
| 1180년 | 기누가사성 전투하타케야마 시게타다 등이 미우라 일족의 기누가사성을 에워쌌다. 여든아홉 살의 미우라 요시아키는 일족을 바닷길로 아와로 피신시키고, 자신은 남아서 싸우다 죽었다. | ≈15% |
| 1180년 | 후지강 전투다이라노 고레모리가 이끄는 추토군이 후지강을 사이에 두고 겐지와 대치했다. 한밤중 늪의 물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자, 헤이케 병사들은 적의 야습인 줄 알고 무기를 버린 채 달아났다. | ≈3% |
| 1180년 | 가나사성 전투요리토모는 이긴 기세를 몰아 교토로 올라가지 않고, 발길을 돌려 히타치의 사타케 씨를 쳤다. 사타케는 산 위의 가나사성에 틀어박혔고, 사타케 일족 안에서 내응한 자가 있어서야 겨우 함락할 수 있었다. | ≈4% |
| 1180년 | 남도 방화나라의 승병들이 모치히토 왕을 지지했다. 다이라노 시게히라가 명을 받아 토벌에 나섰는데, 밤에 불을 밝히다 바람이 일어 도다이지와 고후쿠지가 모두 불탔고, 대불의 머리가 녹아 땅에 떨어졌다. | ≈3% |
| 1181년 | 스노마타강 전투미나모토노 유키이에는 밤을 틈타 스노마타강을 건너 헤이케를 기습하려다 들켜 크게 패했다. 요리토모의 아우 기엔이 강물 속에서 전사했다. | ≈35% |
| 1181년 | 요코타가와라 전투에치고의 조 나가모치가 헤이케의 명을 받아 시나노를 쳤다. 요시나카의 한 부대가 헤이케의 붉은 깃발을 들고 다가가다가, 진 앞에 이르러서야 겐지의 흰 깃발로 바꿔 들자 조씨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다고 한다. | ≈4% |
| 1183년 | 히우치성 전투다이라노 고레모리가 호쿠리쿠 추토군을 이끌고 히우치성을 에워쌌다. 성을 지키던 헤이센지의 장리 사이메이가 몰래 적과 내통해 강을 막은 둑을 허물라고 헤이케에 일러 주었고, 성은 함락되었다. | ≈25% |
| 1183년 | 한냐노 전투요시나카의 젖형제 이마이 가네히라가 한냐노의 헤이케 선봉을 밤에 기습했고, 다이라노 모리토시는 패해 물러났다. | ≈6% |
| 1183년 | 구리카라 고개 전투요시나카는 낮에는 허장성세를 부리다가 밤에 뒤에서 기습했다. 헤이케의 대군은 어둠 속에서 가파른 골짜기 아래로 밀려 떨어져, 사람과 말이 겹겹이 쌓였다. 요시나카가 소뿔에 횃불을 매달았다는 이야기는 뒷날 군기 이야기에서 덧붙인 것이다. | ≈45% |
| 1183년 | 시노하라 전투헤이케는 가가 시노하라에서 또 졌다. 노장 사이토 사네모리는 흰머리를 검게 물들이고 싸움에 나섰는데, 전사한 뒤 수급을 씻고 나서야 그인 줄 알아보았다. 요시나카는 어린 시절 그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적이 있었다. | ≈30% |
| 1183년 | 미즈시마 전투요시나카는 바다 건너 헤이케를 치러 군사를 보냈지만, 빗추 미즈시마에서 헤이케 수군에게 패했다. 싸움이 한창일 때 마침 일식이 일어나 기소의 병사들이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 ≈35% |
| 1183년 | 호주지 전투요시나카의 병사들이 도성에서 양식을 약탈하자, 고시라카와 법황은 그와 등을 돌렸다. 요시나카는 아예 호주지전으로 쳐들어갔고, 천태좌주 묘운이 화살에 맞아 죽었으며 법황은 유폐되었다. | ≈3% |
| 1184년 | 우지강 전투미나모토노 노리요리와 요시쓰네가 요리토모의 명을 받아 서쪽으로 올라가 요시나카를 쳤다. 우지강에서 사사키 다카쓰나와 가지와라 가게스에는 요리토모가 하사한 명마 이케즈키와 스루스미를 타고, 서로 먼저 강을 건너려 다투었다. | ≈20% |
| 1184년 | 아와즈 전투요시나카 곁에는 기마 무사 몇만 남았다. 그는 도모에 고젠에게 떠나라고 했다. 도모에는 마다했지만 끝내 떠났다. 요시나카의 말은 살얼음 낀 논에 빠졌고, 그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얼굴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이마이 가네히라도 주군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자결했다. | ≈60% |
| 1184년 | 미쿠사산 전투요시쓰네는 군사를 이끌고 단바로 돌아가, 밤에 민가에 불을 질러 산길을 밝히고는 단숨에 미쿠사산의 헤이케 진지를 깨뜨렸다. | ≈15% |
| 1184년 | 이치노타니 전투노리요리가 동쪽에서 이쿠타노모리를 맹렬히 치는 사이, 요시쓰네는 적은 기병을 이끌고 뒤쪽 산 위에서 내리달렸다. 헤이케는 허둥지둥 배로 달아났고, 다이라노 다다노리, 미치모리, 아쓰모리 등 일문의 여럿이 전사했다. | ≈35% |
| 1184년 | 후지토 전투다이라노 유키모리가 비젠 고지마에 틀어박혔다. 사사키 모리쓰나는 어부에게 얕은 여울을 물어 알아낸 뒤, 말을 탄 채 해협을 건너 섬으로 쳐들어갔다. 소문이 새지 않도록 그는 뒤에 그 어부를 죽였다고 한다. | ≈6% |
| 1185년 | 야시마 전투요시쓰네는 폭풍을 무릅쓰고 배 다섯 척만으로 바다를 건너 아와에 닿았고, 뒤에서 야시마를 기습했다. 헤이케는 대군이 온 줄 알고 또다시 배로 달아났다. 사토 쓰구노부는 요시쓰네 대신 화살을 맞고 죽었다. | ≈12% |
| 1185년 | 시도 전투헤이케가 시도 포구로 물러나자 요시쓰네가 뒤쫓아 다시 물리쳤다. 야시마 싸움 뒤 구마노와 이요의 수군이 배를 이끌고 겐지 쪽으로 넘어왔다. | ≈8% |
| 1185년 | 단노우라 전투간몬 해협의 단노우라, 겐페이의 마지막 해전이다. 헤이케의 선진이 무너지자 일문 사람들이 잇따라 바다에 몸을 던졌다. 다이라노 도모모리는 "볼 것은 다 보았다" 하고는 갑옷 두 벌을 껴입고 바다에 가라앉았다. | ≈55% |
| 1189년 | 고로모강 전투후지와라노 야스히라는 요리토모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군사를 보내 고로모가와 저택을 쳤다. 요시쓰네의 가신들이 하나둘 전사했고, 요시쓰네는 처자를 죽인 뒤 자결했다. 나이 서른하나였다. | ≈60% |
| 1189년 | 아쓰카시산 전투요리토모가 몸소 대군을 이끌고 오슈로 북정했다. 후지와라노 구니히라는 아쓰카시산에 해자 두 줄을 파고 토루를 쌓아 버텼으나, 사흘 만에 무너졌다. 야스히라는 히라이즈미를 불태우고 달아났다가 자기 가신에게 죽임을 당했다. | ≈20% |
| 1190년 | 오카와 가네토의 난오슈 후지와라 씨의 옛 가신 오카와 가네토가 데와에서 거병하며,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 요시쓰네라고 자칭했다. 가마쿠라는 군사를 북쪽으로 보내 구리하라 일대에서 그를 무찔렀다. | ≈4% |
| 1200년 | 가지와라 가게토키의 변요리토모가 죽은 뒤, 고케닌 예순여섯 명이 연명으로 가지와라 가게토키를 탄핵했다. 가게토키는 일족을 이끌고 교토로 가다가, 스루가에서 그 고장 무사들에게 에워싸여 죽었다. | ≈2% |
| 1201년 | 도리사카성 전투에치고의 조 스케모리가 도리사카성에 틀어박혀 가마쿠라에 맞섰다. 그의 고모 한가쿠 고젠은 성루에 서서 활을 쏘아 백발백중이었는데, 허벅지에 화살을 맞고서야 사로잡혔다. | ≈5% |
| 1203년 | 히키 요시카즈의 변호조 도키마사는 불사를 의논하자며 히키 요시카즈를 집으로 불러 방 안에서 죽였다. 이어 군사가 히키 일족의 저택을 에워쌌고, 2대 쇼군 요리이에의 맏아들 이치만도 불길 속에서 죽었다. | ≈2% |
| 1205년 | 후타마타강 전투호조 도키마사가 하타케야마 시게타다에게 모반의 누명을 씌웠다. 시게타다는 기마 무사 백삼십사 명만 거느리고 있다가 후타마타강에서 토벌 대군과 맞닥뜨렸다. 그는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 죽었다. 사람들은 뒤늦게야 그가 억울했음을 알았다. | ≈2% |
| 1213년 | 와다 전투사무라이도코로 벳토 와다 요시모리는 호조 요시토키의 도발을 견디지 못하고 가마쿠라에서 거병했다. 함께 들고일어나기로 약속했던 미우라 요시무라는 막판에 등을 돌렸다. 시가전은 이틀 동안 이어졌고, 와다 일족은 거의 몰살당했다. | ≈8% |
| 1221년 | 오이도 나루 전투가마쿠라의 대군이 세 갈래로 나뉘어 서쪽으로 올라왔다. 상황 측은 기소강 기슭의 나루마다 군사를 나누어 지켰는데, 병력이 흩어진 탓에 하나씩 차례로 뚫렸다. | ≈25% |
| 1221년 | 조큐 우지강 전투장맛비로 우지강이 급류가 되어 있었다. 호조 야스토키가 억지로 건너라고 명했고, 많은 이들이 말과 함께 떠내려갔다. 강을 건너자 도성은 더 버틸 수 없었다. 고토바 상황은 오키로 유배되어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 ≈35% |
사상률은 사료를 바탕으로 게임이 추정한 수치로, 전사 확률 계산에 쓰입니다. 참고용으로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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