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침입과 가마쿠라 멸망확장 시대
1268년–1333년
몽골 침입과 가마쿠라 멸망(1268년–1333년). 당신은 「로토」에서 시작해, 살아남는다면 「대장」까지 오를 수도 있다. 이 시대에는 실제 전투 35개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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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토
- 사무라이
- 고케닌
- 지토
- 슈고다이
- 슈고
- 대장
실제 전투
| 연도 | 전투 | 추정 사상률 |
|---|---|---|
| 1272년 | 2월 소동싯켄 호조 도키무네는 모반의 죄를 씌워 가마쿠라에서 나고에 도키아키라·노리토키 형제를 죽이고, 로쿠하라에 명해 배다른 형 호조 도키스케를 쳐 죽였다. 뒷날 도키아키라는 무죄로 밝혀졌고, 그를 죽인 자들이 도리어 참수되었다. | ≈4% |
| 1274년 | 쓰시마 고모다하마 전투10월, 원나라와 고려의 선단이 쓰시마 앞바다에 나타났다. 슈고다이 소 스케쿠니가 기마 무사 여든여 명을 이끌고 맞섰으나, 모두 전사했다. | ≈50% |
| 1274년 | 이키 히즈메성 전투슈고다이 다이라노 가게타카는 이키에서 맞서 싸우다 히즈메성으로 물러나 지켰고, 성이 무너지자 자결했다. 섬의 백성은 수없이 죽고 끌려갔다. | ≈50% |
| 1274년 | 모모치바라·아카사카 전투10월 20일, 원군이 하카타만 서쪽에 상륙했다. 히고의 기쿠치 다케후사가 일족을 이끌고 아카사카에서 돌격해 적병을 산 아래로 몰아냈다. | ≈7% |
| 1274년 | 도리카이가타 전투히고의 고케닌 다케자키 스에나가는 주종을 합쳐 기마 다섯뿐인데도 적진으로 돌격했다. 말은 화살을 맞고 자신도 다쳤지만, 다행히 시라이시 미치야스의 본대가 달려왔다. 적병은 짧은 활을 쓰고, 터지는 '뎃포'라는 것까지 던졌다. | ≈10% |
| 1274년 | 하코자키·하카타 전투일본군은 계속 밀려났고, 하코자키 하치만궁이 불탔다. 밤이 되자 모두 다자이후 앞의 미즈키까지 물러났다. 이튿날 아침, 하카타만의 적선은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 | ≈20% |
| 1281년 | 쓰시마·이키 전투5월, 동로군이 고려의 합포를 떠나 다시 쓰시마와 이키를 쳤다. | ≈50% |
| 1281년 | 하카타만 석축 방루6월 초, 동로군이 하카타만으로 들어왔다. 해안 20킬로미터에 걸친 석축 방루가 앞을 가로막아, 적군은 상륙할 곳을 찾지 못했다. | ≈4% |
| 1281년 | 우미노나카미치 전투적선은 시카노시마로 옮겨 정박했다. 일본군은 시카노시마로 이어지는 모래톱 우미노나카미치를 따라 쳐들어갔고, 양군은 백사장에서 며칠 동안 밀고 밀리며 싸웠다. | ≈12% |
| 1281년 | 시카노시마 야습고케닌들은 작은 배를 저어 밤에 적함에 다가가, 기어올라 싸웠다. 이요의 고노 미치아리는 부상을 입고도 적장 하나를 사로잡아 돌아왔다. | ≈15% |
| 1281년 | 이키 세토우라 전투6월 말, 규슈의 고케닌들이 바다를 건너 이키로 물러난 동로군을 쳤다. 쇼니 쓰네스케의 아들 스케토키가 전사했다. 겨우 열아홉 살이었다. 동로군은 강남군과 합류하러 히라도로 물러갔다. | ≈12% |
| 1281년 | 다카시마 전투강남군과 동로군의 배가 히젠 다카시마 일대에 모였다. 윤7월 초하루, 큰 바람이 불어 바다의 배들을 산산조각 냈다. 며칠 뒤 일본군이 섬에 올라 남은 적병을 찾아 죽였다. 《원사》에 따르면 몽골인, 고려인, 북방 한인은 모두 죽임을 당했고, 옛 남송 병사들은 살려 두어 노비로 삼았다. | ≈50% |
| 1285년 | 시모쓰키 소동11월, 도쿠소가의 우치칸레이 다이라노 요리쓰나가 아다치 야스모리를 모반으로 고발하고, 가마쿠라에서 야스모리 일족을 쳐 죽였다. 아다치 집안을 따르던 고케닌들은 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8% |
| 1285년 | 이와토 전투시모쓰키 소동의 여파가 규슈까지 미쳤다. 아다치 집안 편에 섰던 쇼니 가게스케는 지쿠젠 이와토성에서 친형 쓰네스케에게 멸망당했다. | ≈6% |
| 1293년 | 헤이젠몬의 난4월, 가마쿠라 대지진이 있은 지 겨우 아흐레 만에, 싯켄 호조 사다토키가 군사를 보내 다이라노 요리쓰나의 저택을 에워쌌다. 요리쓰나와 둘째 아들 이이누마 스케무네가 모두 죽었다. | ≈3% |
| 1305년 | 가겐의 난4월, 호조 무네카타가 명을 받들었다며 군사를 이끌고 렌쇼 호조 도키무라를 죽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네카타 자신도 토벌되어 가마쿠라에서 죽었다. | ≈4% |
| 1324년 | 쇼추의 변9월, 천황 측근들이 막부 타도를 꾀한 일이 새어 나갔다. 로쿠하라가 군사를 보내 교토의 도키 요리카네와 다지미 구니나가를 쳤고, 두 사람 모두 자결했다. 천황은 모르는 일이라 발뺌했고, 측근 히노 스케토모는 사도로 유배되었다. | ≈3% |
| 1326년 | 쓰가루 출병오슈 쓰가루의 에조 대관 안도 일족이 가독 상속을 두고 싸움을 벌였다. 막부는 구도 스케사다를 북쪽으로 보내 안도 스에나가를 붙잡아 가마쿠라로 압송했다. | ≈3% |
| 1327년 | 쓰가루 대란스에나가의 일족이 산채에 틀어박혀 난은 가라앉지 않았다. 막부는 다시 우쓰노미야 다카사다와 오다 다카토모를 북쪽으로 보내 토벌했고, 이듬해까지 싸우다 결국 화의로 끝맺었다. | ≈7% |
| 1331년 | 가사기산 전투8월, 천황이 삼종 신기를 지니고 교토를 빠져나가 가사기산의 절에 숨었다. 막부는 간토에서 대군을 불러들여 9월 말 가사기를 함락했고, 천황은 붙잡혀 돌아갔다. | ≈30% |
| 1331년 | 시모아카사카성 전투가와치의 구스노키 마사시게가 아카사카에 작은 성을 쌓았다. 《태평기》에 따르면 성 위에서 큰 나무를 굴려 떨어뜨리고 끓는 물을 끼얹었으며, 통째로 넘어가는 가짜 성벽까지 있었다고 한다. 10월에 성이 무너지자 구스노키 마사시게는 성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 ≈12% |
| 1332년 | 아카사카성 탈환구스노키 마사시게가 다시 군사를 일으켜 아카사카성을 되찾았다. 모리요시 친왕은 요시노에서 거병했고, 그의 명령서가 여러 구니에 두루 전해졌다. | ≈10% |
| 1333년 | 요시노성 함락윤2월, 막부군이 요시노를 함락했다. 《태평기》에 따르면 무라카미 요시테루는 모리요시 친왕의 갑옷을 입고 성루에서 자결하여, 친왕이 달아날 시간을 벌어 주었다. | ≈35% |
| 1333년 | 가미아카사카성 함락막부군이 성안의 물길을 끊었다. 수장 히라노 쇼겐은 성문을 열고 항복했으나, 교토로 끌려가 참수되었다. | ≈30% |
| 1333년 | 지하야성 전투구스노키 마사시게는 곤고산의 지하야성으로 물러나 지켰다. 《태평기》에 따르면 그는 허수아비로 적군을 꾀어내고, 산 위에서 큰 돌을 굴려 떨어뜨렸다. 막부의 대군이 백 일 가까이 에워쌌지만 끝내 함락하지 못했다. | ≈12% |
| 1333년 | 센조산 전투천황이 오키를 탈출하자, 호키의 나와 나가토시가 그를 센조산으로 모셨다. 윤2월 말, 오키 슈고 사사키 기요타카가 쳐들어왔으나 격퇴당했다. | ≈20% |
| 1333년 | 마야산 전투하리마의 아카마쓰 노리무라는 모리요시 친왕의 명령서를 받고 교토를 향해 군사를 일으켰다. 그는 셋쓰 마야산에서 로쿠하라가 보낸 군대를 물리쳤다. | ≈15% |
| 1333년 | 교토 공방전3월, 아카마쓰군이 교토로 쳐들어가 거리에서 로쿠하라군과 싸웠으나, 끝내 격퇴당했다. | ≈15% |
| 1333년 | 기쿠치 다케토키의 진제이 단다이 공격3월, 히고의 기쿠치 다케토키가 천황의 윤지를 받고 하카타의 진제이 단다이를 쳤다. 함께 거병하기로 약속했던 쇼니 사다쓰네와 오토모 사다무네가 막판에 마음을 바꾸었고, 기쿠치 다케토키는 전사했다. | ≈3% |
| 1333년 | 고가나와테 전투4월 27일, 막부의 대장 나고에 다카이에가 교토 남쪽 고가나와테에서 아카마쓰군의 사요 노리이에가 쏜 화살 한 대에 맞아 죽었다. | ≈15% |
| 1333년 | 로쿠하라 함락5월 7일, 아시카가 다카우지, 아카마쓰 노리무라, 지쿠사 다다아키가 교토로 쳐들어가 로쿠하라를 무너뜨렸다. 호조 나카토키는 고곤 천황과 두 상황을 모시고 동쪽으로 달아나다가, 오미 반바의 렌게지에서 사백삼십여 명과 함께 자결했다. | ≈25% |
| 1333년 | 고테사시가하라 전투5월 8일, 고즈케의 닛타 요시사다가 이쿠시나 묘진에서 거병해 남쪽으로 내려왔고, 길목마다 간토의 무사들이 잇따라 가담했다. 11일, 그는 무사시 고테사시가하라에서 막부군을 격파했다. | ≈12% |
| 1333년 | 부바이가와라 전투첫날, 닛타군은 호조 야스이에에게 밀려났다. 이튿날 새벽, 미우라 일족의 원군을 얻은 닛타군이 기습하자 막부군은 무너져 흩어졌다. | ≈20% |
| 1333년 | 이나무라가사키·가마쿠라 전투닛타군은 세 갈래로 가마쿠라를 쳤으나, 고쿠라쿠지 고개와 고부쿠로 고개에서 가로막혔다. 《태평기》에 따르면 닛타 요시사다가 칼을 바다에 던지며 기도하자 바닷물이 빠졌고, 대군이 이나무라가사키의 갯벌을 지나 시내로 쏟아져 들어갔다. 5월 22일, 호조 다카토키는 일문과 함께 도쇼지에서 자결했다. | ≈35% |
| 1333년 | 진제이 단다이 함락5월 25일, 쇼니 사다쓰네, 오토모 사다무네, 시마즈 사다히사가 하카타의 진제이 단다이를 쳤다. 단다이 호조 히데토키는 패하여 죽었고, 규슈의 호조 세력은 이로써 사라졌다. | ≈40% |
사상률은 사료를 바탕으로 게임이 추정한 수치로, 전사 확률 계산에 쓰입니다. 참고용으로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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