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골지일

시대 소개

성당과 안사의 난확장 시대

712년–763년

성당과 안사의 난(712년–763년). 당신은 「위사」에서 시작해, 살아남는다면 「장군」까지 오를 수도 있다. 이 시대에는 실제 전투 41개가 담겨 있다.

브라우저에서 무료로 플레이

계급

실제 전투

연도전투추정 사상률
712년냉형 전투유주 도독 손전이 군사를 이끌고 변경 밖으로 나가 해족을 쳤다가, 냉형에서 매복에 걸려 전군이 무너졌다. 손전은 사로잡혀 돌궐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30%
714년북정 전투돌궐의 묵철 가한이 아들 동아 특근을 보내 북정을 에워쌌다. 동아가 홀로 말을 타고 성 아래로 다가오자, 도호 곽건관이 미리 숨겨 둔 장사들이 갑자기 뛰쳐나와 그의 목을 베었다.≈5%
714년무가역 전투토번의 십만 대군이 임조와 위원으로 쳐들어와 관아의 목마를 약탈했다. 왕준은 칠백 명을 골라 호복으로 갈아입히고 적진을 밤에 기습했고, 설눌과 무가에서 합류해 토번을 크게 깨뜨렸다.≈12%
714년조수 전투당군은 조수까지 뒤쫓고, 장자에서 또 한 번 크게 싸웠다. 토번 사람이 너무 많이 죽어, 조수가 흐르지 못할 지경이었다고 한다.≈15%
715년발한나 전투토번과 대식이 세운 아료달이 발한나의 왕위를 빼앗았다. 감찰어사 장효숭이 안서의 군사와 서역 여러 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나아가, 아료달이 지키던 성을 깨뜨렸다.≈5%
717년발환성 전투돌기시가 대식, 토번과 손잡고 안서의 발환성과 대석성을 에워쌌다. 안서 도호 탕가혜가 갈라록의 기병을 불러 구원하게 해, 사진을 지켜 냈다.≈8%
727년과주 함락토번의 대장 실낙라가 과주를 함락하고 자사 전원헌을 사로잡았으며, 성안의 군량을 모조리 실어 가고 성벽까지 허물고서야 떠났다.≈35%
727년과주 전투새로 부임한 자사 장수규가 성벽의 판자를 막 세웠을 때 토번군이 또 왔다. 그는 성 위에서 술상을 차리고 풍악을 울렸다. 토번군은 복병이 있을까 의심해 감히 성을 치지 못했고, 물러가다가 그에게 쫓겨 패했다.≈8%
729년석보성 탈취삭방 절도사 신안왕 이위가 군사를 이끌고 밤낮없이 달려가, 토번이 지키던 석보성을 함락했다. 조정은 이곳에 진무군을 두었다.≈10%
733년도산 전투유주도 부총관 곽영걸이 기병 일만을 이끌고 도산에서 거란의 가돌간과 싸웠다. 함께 온 해족이 싸움 중에 물러가 버렸고, 곽영걸은 전사했다. 남은 육천여 명은 항복을 거부하고 모두 전사했다.≈50%
736년해·거란 토벌전평로 토격사 안녹산은 제 용맹만 믿고 적을 얕보아 무턱대고 나아갔다가 크게 패했다. 절도사 장수규는 그의 목을 베자고 아뢰었지만, 현종은 그를 용서했다.≈25%
737년청해 전투환관 조혜종이 거짓 조서를 전해, 하서 절도사 최희일에게 토번과의 맹약을 깨게 했다. 최희일은 군사를 이끌고 이천여 리를 깊숙이 들어가 청해 서쪽에서 토번을 크게 깨뜨렸다.≈10%
738년안융성 전투검남 절도사 왕욱이 토번의 안융성을 에워쌌다. 토번이 대거 구원하러 와서 당군은 크게 패했고, 새로 쌓은 성 두 곳도 모두 잃었다. 왕욱은 홀몸으로 달아나 돌아왔다.≈25%
739년쇄엽성 전투돌기시에 내란이 일어나자, 적서 절도사 개가운이 쇄엽성으로 쳐들어가 돌기시의 토화선 가한을 사로잡았다.≈12%
741년석보성 함락토번 대군이 달화현을 함락해 성안 사람들을 몰살하고, 석보성까지 되찾았다.≈35%
747년소발률 전투고선지가 기병 일만을 이끌고 총령을 넘어 토번이 지키던 연운보를 함락했고, 다시 얼음과 눈에 뒤덮인 탄구령을 넘어 소발률 왕을 사로잡았으며, 토번으로 통하는 등나무 다리를 끊어 버렸다.≈15%
749년석보성 전투가서한이 육만 삼천 명을 모아 석보성을 쳤다. 성안의 토번 수비군은 수백 명뿐이었는데도 며칠을 버텼다. 성은 끝내 함락했지만, 당군은 수만 명이 죽었다.≈60%
750년석국 원정안서 절도사 고선지는 석국과 화친하는 척하다가 방심한 틈을 타 기습해, 국왕을 사로잡고 성안의 노약자를 죽였다. 석국의 왕자는 달아나 대식에 구원을 청했다.≈3%
750년운남군 함락운남 태수 장건타가 남조 왕 각라봉을 업신여기고 괴롭히자, 각라봉은 군사를 일으켜 운남군을 함락하고 장건타를 죽였다.≈35%
751년서이하 전투검남 절도사 선우중통이 팔만 명을 이끌고 남조를 치러 나섰다. 각라봉이 사람을 보내 사죄하고 화친을 청했지만, 선우중통은 들어주지 않았다. 두 군대는 서이하에서 맞붙었고, 당군은 육만 명이 죽었다.≈50%
751년탈라스 전투고선지가 한병과 번병 삼만 명을 이끌고 칠백여 리를 깊숙이 들어가, 탈라스성에서 대식군과 마주쳤다. 닷새를 맞선 끝에 함께 온 갈라록 부족이 싸움 중에 창끝을 돌렸고, 당군은 크게 패해 수천 명만 살아 돌아왔다.≈45%
751년토호진수 전투안녹산이 육만 명을 이끌고 거란을 치러 나섰다. 연일 큰비가 내려 활과 쇠뇌의 힘줄과 아교가 모두 물러졌고, 길잡이를 맡은 해족마저 등을 돌려 당군은 거의 전멸했다. 안녹산은 화살을 맞고 기병 스무남은 명만 데리고 달아나 돌아왔다.≈45%
753년대발률 전투안서 절도사 봉상청이 대발률을 쳤다. 선봉이 연전연승하자, 부장 단수실이 복병을 조심하라고 권했다. 봉상청이 사람을 보내 산을 뒤지게 하니 과연 복병이 나왔고, 적군을 크게 깨뜨렸다.≈5%
754년태화성 전투이밀이 칠만 명을 이끌고 다시 남조를 치러 갔다가, 꾀임에 빠져 태화성 아래까지 끌려갔다. 남조는 성문을 닫고 싸우지 않았다. 당군은 군량이 떨어지고 풍토병까지 돌아 열에 일고여덟이 죽었고, 물러나다 전멸했다. 그런데도 양국충은 조정에 승전을 보고했다.≈60%
755년낙양 함락봉상청은 낙양에서 급히 육만 명을 모았는데, 대부분 싸움을 해 본 적 없는 저잣거리의 젊은이였다. 반군 철기가 한 번 들이치자, 호뢰관에서 낙양성 안까지 줄곧 패해 밀렸다. 봉상청과 고선지는 동관으로 물러나 지켰으나, 얼마 뒤 현종의 명으로 참수되었다.≈35%
756년상산 함락상산 태수 안고경이 군사를 일으켜 안녹산에 맞서자 하북의 열일곱 군이 호응했다. 사사명이 군사를 돌려 성을 에워쌌고, 성안의 양식과 화살이 바닥나 성이 무너졌다. 안고경은 낙양으로 끌려가 안녹산을 면전에서 꾸짖었고, 죽는 순간까지 욕을 멈추지 않았다.≈45%
756년옹구 전투장순은 작은 옹구성을 지키며 영호조의 수만 대군을 물리쳤다. 화살이 떨어지자 그는 밤에 검은 옷을 입힌 허수아비 천여 개를 성벽 아래로 내려, 화살 수십만 대를 얻어 냈다.≈10%
756년가산 전투곽자의와 이광필이 가산에서 사사명을 크게 깨뜨리고 사만 명의 목을 베었다. 사사명은 말에서 떨어져, 맨발로 부러진 창을 짚고 박릉으로 달아났다.≈20%
756년동관 전투양국충은 가서한을 의심했고, 현종은 거듭 사람을 보내 관문을 나가 싸우라고 재촉했다. 가서한은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는 군사를 이끌고 관문을 나섰다가, 영보 서원에서 최건우의 매복에 걸렸다. 동관으로 돌아온 이는 팔천여 명뿐이었다. 얼마 뒤 그는 부장 화발귀인에게 묶여 안녹산에게 끌려가 항복했다.≈40%
756년진도사 전투재상 방관은 옛 책에 나오는 전차전을 그대로 따라, 소달구지 이천 대로 진을 쳤다. 반군이 바람을 등지고 북을 울리며 불을 지르자, 소 떼가 놀라 날뛰었고 관군은 사만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40%
757년태원 전투사사명이 십만 대군을 이끌고 태원을 에워쌌다. 이광필의 수하는 만 명도 되지 않았지만, 해자를 파고 흙벽돌을 만들고 땅굴을 파며 한 달 넘게 버텼고, 끝내 성을 나가 반군을 크게 깨뜨렸다.≈15%
757년수양 전투장순과 허원은 육천여 명으로 수양을 열 달 가까이 지켜 십여만 반군을 막아 냈고, 그 덕에 강회 지방이 보전되었다. 양식이 떨어지자 수비군은 나무껍질과 참새와 쥐까지 다 먹었고, 마지막에는 성안의 사람까지 먹었다. 10월에 성이 무너졌고, 원군은 사흘 뒤에야 도착했다.≈60%
757년향적사 전투광평왕 이숙이 당군과 회흘 기병을 이끌고 장안성 남쪽에 진을 쳤다. 이사업은 웃옷을 벗어 던지고 긴 칼을 쥔 채 진 앞에 서서 고함치며 돌격했고, 회흘 기병이 적의 뒤로 돌아가 협공해 육만 명의 목을 베었다. 이튿날 장안을 되찾았다.≈30%
757년신점 전투곽자의가 신점에서 반군과 결전을 벌였다. 회흘 기병이 산 위에서 내리달려 적의 뒤를 치자 반군은 크게 무너졌다. 안경서는 업성으로 달아났고, 낙양을 되찾았다.≈25%
759년업성 전투아홉 절도사의 대군이 업성을 몇 달이나 에워쌌지만, 원수는 없고 환관 어조은이 감군을 맡았을 뿐이었다. 사사명이 정예 오만을 이끌고 구원하러 왔고, 두 군대가 안양하 북쪽에서 맞붙었을 때 갑자기 큰 바람이 불었다. 모래가 날리고 나무가 뽑혀 대낮이 밤처럼 어두워졌고, 관군은 남쪽으로 무너져 달아났다.≈15%
759년하양 전투이광필은 낙양을 버리고 하양으로 물러나 지켰다. 그는 암말 오백 필을 강가로 끌고 나가고 망아지는 성안에 매어 두었다. 암말이 울자 사사명의 군마 천여 필이 모두 강을 헤엄쳐 건너왔고, 그대로 성안으로 몰려 들어갔다.≈12%
760년회주 전투이광필은 회주를 백여 일 동안 에워싼 끝에 마침내 성을 깨뜨리고, 수장 안태청을 사로잡았다.≈15%
761년망산 전투환관 어조은이 반군을 깨뜨릴 수 있다고 하자, 조정은 이광필에게 낙양을 치라고 재촉했다. 이광필은 산을 의지해 진을 치려 했지만, 복고회은은 굳이 평원에 진을 쳤다. 반군은 진이 미처 갖춰지기 전에 들이쳤고, 관군은 크게 패해 하양과 회주를 모두 잃었다.≈20%
762년낙양 재수복옹왕 이괄이 천하병마원수가 되어, 복고회은과 회흘군과 함께 낙양 북쪽 교외에서 사조의를 크게 깨뜨렸다. 회흘군은 성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죽이고 약탈했고, 큰불은 수십 일이나 이어졌다. 관군도 덩달아 몇 달 동안 약탈했다.≈30%
763년막주 전투사조의는 막주에서 포위되었다가 포위를 뚫고 북쪽으로 달아났다. 범양의 이회선은 이미 조정에 항복한 뒤였고, 성을 지키던 이포충은 성문을 닫고 들이지 않았다. 갈 곳이 없어진 사조의는 숲속에서 목을 매어 자결했다.≈35%
763년토번의 장안 함락토번이 토욕혼, 당항과 손잡고 이십여만 명으로 당나라 서쪽이 빈 틈을 타 장안까지 쳐들어왔고, 대종은 섬주로 달아났다. 토번은 장안에 허수아비 황제를 세웠다가 보름 뒤에야 물러갔다.≈25%

사상률은 사료를 바탕으로 게임이 추정한 수치로, 전사 확률 계산에 쓰입니다. 참고용으로만 봐 주세요.

브라우저에서 무료로 플레이

다른 시대

繁體中文简体中文English日本語한국어PortuguêsРусскийItali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