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골지일

시대 소개

송금 전쟁확장 시대

1115년–1165년

송금 전쟁(1115년–1165년). 당신은 「병사」에서 시작해, 살아남는다면 「도통제」까지 오를 수도 있다. 이 시대에는 실제 전투 40개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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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실제 전투

연도전투추정 사상률
1115년장저하성 전투동관이 유중무와 왕후에게 섬서 여러 로의 군사를 모아 서하의 장저하성을 치게 했으나, 크게 패하고 돌아왔다.≈15%
1119년통안성 전투동관은 희하 경략사 유법을 다그쳐 서하를 치게 했다. 유법은 통안성에서 서하 진왕 찰가의 대군과 맞닥뜨려 날이 저물도록 힘겹게 싸웠고, 포위를 뚫다가 벼랑에서 떨어져 서하 병사에게 죽임을 당했다.≈30%
1120년항주 함락방랍이 목주 청계에서 들고일어나자, 화석강에 시달리던 각지의 백성들이 잇따라 호응했다. 12월, 항주성이 무너지고 큰불이 며칠이나 이어졌으며, 양절의 제치사 진건과 염방사 조약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40%
1121년수주 전투방랍의 부장 방칠불이 수주를 에워싸자, 통군 왕자무는 원군을 기다리며 죽기로 지켰다. 왕품이 서군을 이끌고 달려와 안팎에서 협공하니, 봉기군은 크게 패했다.≈15%
1121년항주 수복동관이 서군과 금군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왕품이 항주를 되찾자, 방랍은 고향 청계로 물러났다.≈12%
1121년방원동 전투방랍은 방원동에 숨어들었다. 한세충은 마을 아낙에게 샛길을 물어 사람들을 이끌고 동굴로 숨어들어 방랍을 사로잡았지만, 공은 신흥종에게 빼앗겼다. 동굴 밖 골짜기에서 죽은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40%
1122년백구 전투송군이 연경을 치러 북벌에 나섰다. 동관은 요나라 사람들이 소문만 듣고도 항복해 올 줄 알고, 먼저 손을 쓰지 말라고 명했다. 요나라 장수 야율대석이 백구하에서 치고 나오자, 충사도의 대군은 웅주로 패해 물러났다.≈8%
1122년연경 기습항장 곽약사가 군사를 이끌고 밤을 틈타 연경성에 숨어들어, 성안에서 요군과 시가전을 벌였다. 약속한 원군 유광세가 오지 않아 성에 들어간 송군은 거의 다 죽었고, 곽약사는 밧줄을 타고 성벽을 내려와 달아났다.≈35%
1122년노구의 궤주유연경은 노구하 남쪽에 진을 쳤다가, 밤에 북쪽에서 불빛이 보이자 요군이 대거 쳐들어오는 줄 알고 진영을 불태우고 달아났다. 병사들은 서로 밟고 밟혔고, 희녕·원풍 이래 쌓아 온 군기와 군량을 거의 다 잃었다.≈15%
1125년백하 전투금나라 동로군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곽약사는 상승군을 이끌고 백하에서 맞섰다가 패하자, 곧바로 금나라에 항복하고 도리어 금군의 길잡이가 되었다.≈20%
1126년제1차 변경 포위흠종이 즉위하자마자 금군은 황하를 건너 동경성 아래에 이르렀다. 이강은 성에 올라 싸움을 독려하며, 벽력포와 상자노로 공성을 물리쳤다. 조정은 한편으로 태원·중산·하간의 삼진을 떼어 주기로 하고 화의를 맺으면서, 한편으로 각지에서 올 근왕병을 기다렸다.≈5%
1126년요평중의 겁영서군 장수 요평중이 군사를 이끌고 금군 진영을 밤에 기습해 금군 주장을 사로잡으려 했다. 금나라 사람들은 이미 대비하고 있었고, 기습은 실패했다. 요평중은 홀로 말을 타고 달아나, 그 뒤로 이름을 감추고 숨어 살았다. 얼마 뒤 금군은 삼진을 떼어 준다는 조서를 받고 북쪽으로 물러갔다.≈30%
1126년살웅령 전투노장 충사중은 명을 받고 태원을 구하러 갔지만, 약속한 원군은 오지 않았다. 그는 유차에서 금군에게 포위되어 몸에 네 군데 상처를 입고도 힘껏 싸우다 죽었다.≈35%
1126년태원 함락왕품은 태원을 이백오십여 일 동안 지켰다. 성안의 양식이 떨어지자 소가죽과 활과 쇠뇌의 힘줄까지 먹었다. 9월에 성이 무너지자, 왕품은 태종 황제의 초상을 등에 지고 분하에 몸을 던졌다.≈50%
1126년변경 함락금군이 두 번째로 성을 에워쌌고, 큰눈이 그치지 않았다. 조정은 곽경이라는 자가 '육갑신병'으로 적을 깨뜨릴 수 있다고 믿었다. 곽경이 선화문을 열고 나가 싸웠으나 부딪치자마자 무너졌고, 금군은 그 기세를 타고 성벽에 올랐다.≈30%
1129년양주 함락금군이 양주로 내달아 기습하자, 고종은 몇 사람만 데리고 말을 달려 과주로 도망쳐 강을 건넜다. 미처 달아나지 못한 군민은 강가에 몰려들었고, 죽임을 당하고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15%
1129년임평 전투통제 묘부와 유정언이 병변을 일으켜, 고종에게 세 살 난 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라고 다그쳤다. 한세충 등이 근왕병을 일으켜 임평에서 반군을 깨뜨렸고, 고종은 다시 제위에 올랐다.≈4%
1129년마가도 전투금올출이 건강 상류의 마가도에서 장강을 건넜다. 도통제 진쉬는 힘껏 싸우다 죽었고, 우군은 싸우지도 않고 달아났다. 악비의 부대만이 끝까지 힘겹게 싸웠다. 주장 두충은 얼마 뒤 금나라에 항복했다.≈20%
1129년명주 전투금군은 고종을 뒤쫓아 절동까지 내려왔다. 장준이 명주성 아래에서 금군을 막아 냈는데, 남쪽으로 내려온 뒤 첫 승리였다. 고종은 이미 배를 타고 바다로 피해 나간 뒤였다.≈6%
1130년황천탕 전투금올출이 북쪽으로 물러나 진강에 이르자, 한세충은 수군 팔천으로 강을 막아 금군을 황천탕에 마흔여드레 동안 가두었다. 한세충의 부인 양씨가 몸소 북을 울려 싸움을 독려했다. 마침내 금군은 노관하의 옛 물길을 뚫고, 바람 없는 날을 골라 불화살로 송군의 큰 배들을 불태운 뒤 포위를 뚫고 북쪽으로 갔다.≈10%
1130년건강 수복악비는 우두산에 복병을 두고, 밤마다 사람을 금군 진영에 숨어들게 해 어지럽혔다. 또 정안진에서 북쪽으로 물러가는 금군을 가로막아 쳐서 건강을 되찾았다.≈10%
1130년부평 전투장준이 섬서 다섯 로의 서군을 모아 부평에서 금군과 결전을 벌이려 했다. 금군 기병은 땔나무와 풀을 깔아 늪을 건너 환경군의 진지로 뛰어들었고, 송군은 전선에 걸쳐 무너졌다. 섬서의 태반을 잃었다.≈20%
1131년화상원 전투오개와 오린 형제가 화상원에서 강궁과 강노로 번갈아 일제히 쏘자, 금군은 크게 패했다. 올출은 빗나간 화살에 맞고, 수염을 깎고서야 겨우 빠져나갔다.≈12%
1133년요풍관 전투금나라 장수 살리갈이 요풍관을 맹렬히 치자, 오개는 엿새 동안 죽기로 지켰다. 그러나 도망병 하나가 금군에게 산 뒤의 샛길을 알려 주어 관문을 잃었다.≈15%
1134년선인관 전투올출과 살리갈이 대군을 이끌고 다시 촉구를 쳤다. 오개와 오린은 선인관 앞의 살금평에 두 겹의 보루 벽을 쌓았고, 금군은 여러 날을 쳐도 뚫지 못하고 크게 패해 돌아갔다.≈10%
1134년양양 6군 수복악비가 군사를 이끌고 북상해 위제의 손에서 영주, 양양, 수주, 당주, 등주와 신양군을 되찾았다. 남쪽으로 내려온 뒤 처음으로 잃은 땅을 크게 되찾은 것이었다.≈10%
1134년대의진 전투금과 위제의 연합군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한세충은 물러나는 척하며 대의진에 복병을 두었다. 배외군이 긴 도끼를 들고 위로는 사람의 가슴을, 아래로는 말의 다리를 찍자 금군은 크게 패했다.≈10%
1135년동정호 전투동정호의 양요는 무리를 모은 지 대여섯 해, 수채의 차선은 발로 밟아 바퀴 노를 돌려 호수 위를 나는 듯 오갔다. 악비는 썩은 나무와 엉킨 풀을 호수에 뿌리게 해 차선의 바퀴를 휘감아 버렸다.≈3%
1136년우당 전투위제가 세 갈래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양기중이 우당에서 유예를 맞받아쳐, 위제군은 크게 패하고 많은 병사가 항복했다.≈12%
1136년상·괵 수복악비는 군사를 북쪽으로 보내 위제가 차지하고 있던 상주, 괵주와 이양 일대를 빼앗았다. 그러나 군량과 말먹이를 대지 못해 얼마 뒤 다시 물러났다.≈10%
1140년순창 전투금나라가 화약을 깨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유기는 팔자군을 이끌고 순창에 이르러 배를 모두 구멍 내 가라앉히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 6월 무더위에 그는 병사들을 번갈아 쉬게 하고, 영수 상류와 풀숲에 독을 풀었다. 금군이 덥고 목마를 때를 기다려 성을 나가 들이치니, 올출은 크게 패했다.≈12%
1140년언성 전투올출이 정예 기병을 이끌고 언성의 악비 본영으로 곧장 덮쳐 왔다. 악비는 보병에게 마찰도와 큰 도끼를 들려, 고개를 숙이고 말의 다리만 찍게 했다. 금군의 '괴자마'는 크게 패했다.≈10%
1140년영창 전투악비의 맏아들 악운이 배외 기병을 이끌고 영창성 밖에서 십여 차례를 치고 빠지니, 사람은 피투성이가 되고 말도 피범벅이 되었다. 올출의 사위 하금오가 전사했다.≈12%
1141년자고 전투올출이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자고에 기병을 펼쳤다. 양기중, 유기, 왕덕이 군사를 합쳐 맞섰고, 송군이 긴 도끼로 찍어 대자 금군은 크게 패해 북쪽으로 물러갔다.≈10%
1141년호주 전투호주는 이미 함락되었는데도, 양기중은 명을 받고 진군했다. 금군이 성안에 복병을 두었고, 송군은 크게 어지러워져 무너져 달아났다.≈20%
1161년당도 해전해릉왕이 수군을 보내 바닷길로 남하하게 했다. 이보는 배 백이십 척을 이끌고 당도 앞바다에서 기습해, 불화살을 금나라 배의 기름 먹인 돛에 쏘았다. 금군의 선단은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30%
1161년채석기 전투주장 왕권은 파면되었고, 새 주장은 아직 오지 않았다. 군사들을 위로하러 온 문관 우윤문이 강가에 흩어져 있던 만팔천 명을 불러 모아, 해추선으로 강을 건너는 금군의 작은 배들을 들이받아 해릉왕을 막아 냈다.≈15%
1162년덕순 전투오린이 군사를 내어 섬서의 주현을 되찾으려 했고, 덕순군에서 금군과 거듭 뺏고 빼앗기다가 끝내 금군을 물리쳤다.≈8%
1163년부리의 궤주효종이 장준에게 북벌을 명하자, 이현충과 소굉연이 숙주를 함락했다. 두 장수는 사이가 나빴고, 금군 원병이 도착하자 소굉연은 군사를 움직이지 않았다. 송군은 밤중에 스스로 무너져 부리에서 크게 패했다.≈25%
1164년회음 전투금군이 회수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왔다. 위승은 회음에서 맞서 싸웠으나 원군이 끝내 오지 않았고, 그는 힘껏 싸우다 죽었다.≈25%

사상률은 사료를 바탕으로 게임이 추정한 수치로, 전사 확률 계산에 쓰입니다. 참고용으로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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