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교체기확장 시대
기원전 262년–기원전 202년
진한 교체기(기원전 262년–기원전 202년). 당신은 「졸」에서 시작해, 살아남는다면 「장군」까지 오를 수도 있다. 이 시대에는 실제 전투 45개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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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
- 오장
- 십장
- 둔장
- 백장
- 오백주
- 장군
실제 전투
| 연도 | 전투 | 추정 사상률 |
|---|---|---|
| 기원전 262년 | 야왕 전투백기가 한나라를 치자 야왕이 진나라에 항복했다. 한나라의 상당군은 이로써 도성과 길이 끊겼고, 상당 군수는 상당을 조나라에 바쳤다. | ≈4% |
| 기원전 260년 | 장평 대치왕흘이 상당을 함락하자 상당의 백성들은 조나라로 달아났다. 노장 염파는 장평에 보루를 쌓고 굳게 지키며 나오지 않았고, 두 군대는 여러 달 동안 대치했다. | ≈6% |
| 기원전 260년 | 장평 전투조왕은 반간계에 넘어가 젊은 조괄을 염파 대신 장수로 세웠다. 진나라는 몰래 장수를 백기로 바꾸었다. 조괄이 나가 싸우자 진군은 패해 물러나는 척했고, 기병이 조군의 퇴로와 군량 길을 끊었다. | ≈45% |
| 기원전 259년 | 한단 포위진군이 조나라의 도성 한단을 에워쌌다. 성 밖의 원군은 좀처럼 오지 않았고, 성안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굶주렸다. | ≈10% |
| 기원전 257년 | 한단 포위 해제한단성 안은 이미 뼈를 쪼개 불을 때고 자식을 바꾸어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평원군은 집안 재산을 군사들에게 나눠 주고 집안의 처첩까지 대오에 넣어 일을 하게 했다. 위나라의 신릉군은 위왕의 총희에게 부탁해 병부를 훔쳐 내고, 업에서 진비의 병권을 빼앗아 정병 팔만을 가려 뽑아 조나라를 구하러 왔다. 초나라의 춘신군도 군사를 이끌고 왔다. 진군은 한단성 아래에서 크게 패했다. | ≈15% |
| 기원전 256년 | 양성 전투장군 규가 한나라를 쳐서 양성과 부서를 빼앗았다. 〈진본기〉에는 이 싸움에서 사만 명의 목을 베었다고 적혀 있다. | ≈6% |
| 기원전 251년 | 호 전투연나라는 조나라의 장정들이 장평에서 다 죽었다고 여기고 율복을 보내 쳐들어왔다. 염파는 호에서 연군을 크게 깨뜨리고 율복을 죽였다. | ≈6% |
| 기원전 247년 | 하외 전투위나라로 돌아온 신릉군은 다섯 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하외에서 진나라 장수 몽오를 크게 깨뜨리고, 함곡관 아래까지 뒤쫓았다. | ≈12% |
| 기원전 244년 | 몽오의 한나라 공격몽오가 한나라를 쳐서 성 열세 곳을 빼앗았다. | ≈6% |
| 기원전 242년 | 동군 전투몽오가 위나라를 쳐서 단숨에 성 스무 곳을 빼앗았다. 진나라는 이곳에 동군을 두었다. | ≈12% |
| 기원전 241년 | 다섯 나라의 합종 진나라 공격동방의 여러 나라가 마지막으로 힘을 합쳐 진나라를 쳤다. 조나라 장수 방난이 연합군의 정예를 이끌고 함양에서 멀지 않은 최까지 쳐들어갔으나 함락하지 못했다. 진군이 나와 싸우자 연합군은 저마다 흩어져 물러갔다. | ≈8% |
| 기원전 239년 | 둔류의 난진왕의 아우 장안군 성교가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를 치다가 둔류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성교는 둔류에서 죽었고, 그를 따른 군리들은 모두 참수되었으며, 둔류의 백성은 임조로 옮겨졌다. | ≈5% |
| 기원전 238년 | 함양 전투장신후 노애가 진왕의 옥새를 몰래 써서 군사를 일으켜 난을 꾸몄다. 진왕은 창평군과 창문군에게 군사를 내게 해 함양에서 반군을 무찔렀다. 이해 진왕은 스물두 살로, 막 관례를 치른 참이었다. | ≈1% |
| 기원전 236년 | 업 전투왕전, 환의, 양단화가 세 갈래로 조나라를 쳐서 업과 그 둘레의 성 아홉 곳을 빼앗았다. | ≈10% |
| 기원전 234년 | 평양 전투환의가 평양을 쳐서 조나라 장수 호첩을 죽였다. 《사기》에는 이 싸움에서 십만 명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 ≈35% |
| 기원전 233년 | 비 전투조왕은 북쪽 변경에서 이목을 불러들였다. 이목은 비 아래에서 환의를 물리치고 무안군에 봉해졌다. | ≈12% |
| 기원전 232년 | 번오 전투진군이 다시 번오를 쳐 왔지만, 이목이 또 한 번 그들을 물리쳤다. | ≈8% |
| 기원전 230년 | 한나라 멸망전내사 등이 한나라를 쳐서 한왕 안을 사로잡았다. 한나라는 여섯 나라 가운데 가장 먼저 망했다. | ≈4% |
| 기원전 229년 | 왕전의 조나라 공격왕전이 대군을 이끌고 조나라를 치자, 이목과 사마상이 꼬박 한 해를 막아 냈다. 진나라는 큰돈을 들여 조왕의 총신 곽개를 매수했다. | ≈7% |
| 기원전 228년 | 한단 함락이목이 죽은 뒤 조군은 더 이상 왕전을 막지 못했다. 한단성이 무너지고 조왕 천은 사로잡혔다. 공자 가는 대 땅으로 달아나 스스로 대왕이 되었다. | ≈20% |
| 기원전 226년 | 역수 전투형가의 진왕 암살이 실패한 뒤, 진군은 역수 서쪽에서 연·대 연합군을 깨뜨렸다. 이듬해 진군은 연나라의 도성 계를 함락했다. 연왕 희는 요동으로 달아났다. | ≈6% |
| 기원전 225년 | 대량 포위위나라의 도성 대량은 성벽이 단단했다. 왕분은 강둑을 터서 물을 끌어들여 성을 잠기게 했고, 석 달 뒤 성벽이 무너지자 위왕 가가 성을 나와 항복했다. | ≈25% |
| 기원전 225년 | 성보 전투젊은 이신은 이십만이면 초나라를 멸할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연전연승했지만, 초군은 사흘 밤낮을 바짝 뒤쫓아 보루 두 곳을 깨뜨리고 도위 일곱 명을 죽였다. | ≈25% |
| 기원전 224년 | 기남 전투노장 왕전은 육십만 명을 이끌고 초나라에 들어가, 성벽을 굳게 지킬 뿐 싸우지 않고 날마다 병사들을 씻기고 배불리 먹였다. 초군이 동쪽으로 물러나자 왕전은 전군으로 뒤쫓아 기남에서 초군을 크게 깨뜨렸다. | ≈25% |
| 기원전 223년 | 초나라 멸망전초왕 부추는 이미 사로잡혔다. 항연은 창평군을 왕으로 세우고 회남에서 계속 맞섰다. 왕전과 몽무가 다시 초군을 깨뜨렸고, 창평군이 죽고 항연도 죽었다. | ≈30% |
| 기원전 222년 | 요동 전투왕분이 요동으로 쳐들어가 연왕 희를 사로잡고, 돌아오는 길에 대왕 가도 사로잡았다. | ≈4% |
| 기원전 221년 | 임치 항복왕분이 연나라 땅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곧장 제나라로 들어갔다. 제왕 건은 싸우지도 않고 항복했다. 여섯 나라가 모두 망했다. | ≈1% |
| 기원전 215년 | 몽염의 흉노 북벌몽염이 삼십만 대군을 이끌고 북쪽으로 흉노를 쳐서, 황하 남쪽의 '하남 땅'을 빼앗았다. | ≈12% |
| 기원전 214년 | 육량 땅 공략조정은 도망친 적이 있는 자, 데릴사위, 장사꾼을 모아 군대로 편성해 남쪽 영남으로 내려보냈고, 계림·상군·남해의 세 군을 두었다. | ≈12% |
| 기원전 209년 | 대택향 봉기들고일어난 구백 명은 대택향과 기현을 함락하며 가는 곳마다 사람과 말을 거두어들였다. 진현에 이르렀을 때는 전차 육칠백 승, 기병 천여 명, 보졸 수만 명이 되어 있었다. 진승은 진에서 왕을 칭하고 나라 이름을 '장초'라 했다. | ≈5% |
| 기원전 209년 | 희 전투장초의 장군 주문이 수십만 명을 이끌고 함양에서 멀지 않은 희까지 쳐들어왔다. 진 이세는 여산의 죄수들을 사면해 소부 장한에게 맡겼고, 장한은 주문을 물리쳤다. | ≈35% |
| 기원전 208년 | 진현 전투장한은 동쪽으로 나아가며 진현을 함락했다. 진승은 하성보로 물러났다가 자기 수레꾼 장가에게 죽임을 당했다. 왕을 칭한 지 겨우 여섯 달이었다. | ≈30% |
| 기원전 208년 | 동아 전투항량은 초 회왕의 손자 웅심을 왕으로 세우고, 그대로 초 회왕이라 불렀다. 이해 항량은 동아에서 장한을 깨뜨렸다. | ≈10% |
| 기원전 208년 | 정도 전투항량은 잇따라 이기자 적을 얕보았다. 장한은 원군을 얻어, 밤에 병사들 입에 하무를 물리고 정도를 기습했다. 항량은 전사했다. | ≈20% |
| 기원전 207년 | 거록 전투항우는 장수를 건넌 뒤 배를 가라앉히고 솥을 깨고 막사를 불태우라 명하고, 사흘 치 양식만 지니게 했다. 초군은 진군과 아홉 번 싸워 진군의 용도를 끊고, 진나라 장수 왕리를 사로잡았다. 여러 제후의 원군은 보루 위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도 감히 내려오지 못했다. | ≈30% |
| 기원전 206년 | 진창 전투유방은 한왕에 봉해져 한중으로 가는 길에 잔도를 불태웠다. 몇 달 뒤 그는 고도로 쳐 나와 진창에서 옹왕 장한을 깨뜨렸다. | ≈6% |
| 기원전 205년 | 팽성 전투한왕은 오십육만 제후 연합군을 이끌고 팽성에 들어가, 날마다 술자리를 벌였다. 항우는 정예 삼만을 이끌고 제나라 땅에서 되돌아와, 새벽부터 한낮까지 싸워 한군을 무너뜨렸다. 십여만 한나라 병사가 수수로 몰려 빠져 죽어, 수수가 흐르지 못할 지경이었다. | ≈35% |
| 기원전 205년 | 경·삭 전투한왕은 형양에서 패잔병을 거두었고, 소하는 관중의 노약자까지 싸움터로 보냈다. 한군은 경과 삭 사이에서 초군을 막아 냈다. | ≈8% |
| 기원전 205년 | 안읍 전투위왕 표가 한을 배반하고 초에 붙었다. 한신은 임진에 배를 늘어놓고 강을 건너는 척했지만, 주력은 하양에서 나무 항아리로 황하를 건너 안읍을 기습하고 위왕 표를 사로잡았다. | ≈5% |
| 기원전 204년 | 정형 전투한신이 군사 일만 명에게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자, 조군은 보고 크게 비웃었다. 경기병 이천이 조군이 진영을 비운 틈을 타 조군의 깃발을 뽑고 한군의 붉은 깃발 이천 개를 꽂았다. 조군은 크게 어지러워졌고, 진여는 지수 가에서 목이 베였으며 조왕 헐은 사로잡혔다. | ≈5% |
| 기원전 204년 | 형양 포위초군이 한군의 군량 길을 끊고 형양을 에워쌌다. 장군 기신이 한왕으로 꾸미고 왕의 수레에 올라 동문으로 나가 항복하는 사이, 유방은 서문으로 달아났다. 항우는 기신을 불태워 죽였다. | ≈12% |
| 기원전 203년 | 유수 전투초나라 장수 용저가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를 구하러 왔다. 한신은 밤에 모래주머니 만여 개로 유수 상류를 막고, 강을 건너가 패하는 척했다. 용저가 강을 건너 뒤쫓을 때 모래주머니를 치우자, 큰물이 초군을 둘로 끊었다. 용저는 죽임을 당했다. | ≈30% |
| 기원전 203년 | 성고 전투항우는 동쪽으로 팽월을 치러 가면서 대사마 조구에게 성고를 지키게 했다. 한군이 날마다 욕을 퍼붓자, 조구는 참지 못하고 사수를 건너 나와 싸웠다. 군사가 반쯤 건넜을 때 한군이 들이쳤다. 조구는 사수 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20% |
| 기원전 202년 | 고릉 전투초와 한은 홍구를 경계로 화친했다. 항우는 동쪽으로 돌아갔지만, 유방은 약속을 어기고 뒤쫓았다. 한신과 팽월이 약속대로 오지 않아, 한군은 고릉에서 초군에게 졌다. | ≈8% |
| 기원전 202년 | 해하 전투한신, 팽월, 영포의 대군이 모두 도착해 초군은 겹겹이 포위되었다. 항우는 기병 팔백여 명을 이끌고 밤새 포위를 뚫었으나, 동성에 이르렀을 때는 스물여덟 기만 남았다. 오강의 정장이 그를 배로 건네주려 하자 그는 말했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데, 내가 건너서 무엇 하겠는가!" 그리고 강가에서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 ≈50% |
사상률은 사료를 바탕으로 게임이 추정한 수치로, 전사 확률 계산에 쓰입니다. 참고용으로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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